

충무공 이순신 > 온라인 유적지 탐방
관리자
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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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승전지23 메모리투어 장소4(이충무공 사천해전승첩기념비)
승전지23 메모리투어(23개 인증 장소): 이순신 장군이 승리로 이끈 23번의 해전과 관련된 장소를 돌아보는 승전지 투어
23번의 승전 중 네 번째 승전은 최초로 거북선이 출동한 사천해전입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왜군을 완전히 궤멸시킨 전투로 이 전투에 참여한 왜군 전원이 전사하였습니다. 열세인 전력임에도 왜군은 자신들의 강점인 백병전으로 맞서고자 했지만 거북선까지 동원된 이 전투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한 채 배를 버리고 육지로 후퇴합니다. 조선 수군은 왜선 전체를 격침하지 않고 2척을 남겨둔 채로 철수하였는데 이는 남은 왜군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였습니다. 남은 함선을 타고 도주하는 왜군도 결국 매복한 조선 수군에 의해 전멸되고 맙니다.
아군의 피해는 3명 부상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이순신 장군을 포함한 나대용, 이설과 같은 주요 장수들이 부상자 명단에 들었습니다. 이는 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의 배가 왜군의 조총 유효사거리 안에 있을 만큼 매우 근거리에서 전투에 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중상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이 부상으로 인해 부상후유증으로 계속 고생을 하였고, 난중일기에도 밤새 몸앓이를 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이순신 장군은 정2품 정헌대부에 오르고, 이억기와 원균은 종2품 가선대부에 오릅니다.
사천 선진공원에 세워진 이충무공사천해전승첩기념비를 사천해전의 인증 장소로 지정해 보았습니다.
다음의 내용은 스탬프투어의 승전지23 메모리투어 코스에서 소개되는 내용입니다.
- 장소명: 이충무공 사천해전승첩기념비
- 권역: 경남 사천시
- 인증 반경: 100m
- 서브타이틀: 사천해전(4승)
- 내용
이순신 장군의 네 번째 승전보로 기록된 사천해전 개요는 다음과 같다.
- 날짜: 1592년 5월 29일(양력 7월 8일)
- 결과: 왜군 피해(13척 격침, 2,600여명 사망), 조선군 피해(3명 부상)
- 장소: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1592년 5월 29일(양력 7월 8일) 이순신 장군은 전선 23척, 원균은 3척을 거느리고 출동했다. 이순신 장군이 사천선창에 나아가 왜적들을 모자랑포(모충공원에서 미룡마을 사이)로 유인한 뒤 거북선을 출동시켜 천.지.현.황자의 각 총통과 화살을 발사한 결과, 조선은 26척으로 왜선 13척을 격파했다. 사천해전은 거북선이 최초로 출동한 해전이다. 이충무공사천해전승첩기념비는 1978년에 사천 선진공원에 세워졌다. 선진공원은 정유재란 때 왜군이 쌓은 선진리성에 조성된 공원이다.
1592년 5월 29일의 난중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수사(이억기)가 오지 않으므로 홀로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새벽에 출발하여 곧장 노량으로 가니, 경상 우수사 원균이 미리 만나기로 약속한 곳에 와 있어서 함께 상의했다. 왜적이 정박한 곳을 물으니, "왜적들은 지금 사천선창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그곳에 가보았더니 왜인들은 이미 뭍으로 올라와서 산봉우리 위에 진을 치고 배는 그 산봉우리 아래에 줄지어 정박했는데, 항전하는 태세가 재빠르고 견고했다. 나는 여러 장수들을 독려하여 일제히 달려들어 화살을 비 퍼붓듯이 쏘고, 각종 총통을 바람과 우레같이 난사하게 하니, 적들은 무서워서 후퇴했다. 화살에 맞은 자가 몇 백 명인지 알 수 없고,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에 맞았고,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아 등을 관통하였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활꾼과 격군 중에서 탄환을 맞은 사람도 많았다. 적선 13척을 분멸하고 물러나와 주둔했다."
◎ 위치: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