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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냐 자살이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5-08-10

조회 38



전사냐 자살이냐.....

진린 도독이 이순신에게 보낸 편지...
내가 밤이면 천문을 보고 낮이면 사람의 일을 
살펴왔는데, 동방에 대장 별이 희미해져 가니 
멀지 않아 공(公)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공이 어찌 이를 모를 리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어찌하여 무후(武候 : 제갈량)의 예방하는 
법을 쓰지 않으십니까?

진린 도독에게 답하는 글...
저는 충성이 무후(武候)만 못하고, 덕망이 
무후만 못하고, 재주가 무후만 못합니다. 
세 가지 모두 다 무후만 못하므로 비록 무후의 
법을 쓴다 한들 어찌 하늘이 들어줄 리 있겠습니까?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위의 편지는 무술년(1598년) 11월 17일에 진린 도독과
이순신 장군 간에 오고 간 편지 입니다. 그 내용이 중국 
청산도에 있는 진린(陳璘) 도독의 비문에 새겨져 있습니다. 
편지를 쓴 이튿날 과연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는 이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598년 11월 19일(庚子) 오전 
10시경(巳時),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
하셨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왜 제갈량의 비법을 사용하여 닥쳐오는 
죽음의 사신을 물리치지 않고 맞이했을까요?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순수한 전사다, 전사를 가장한 자살이다
등등 온갖 설들이 난무합니다. 세인들은 죽음을 가장한
자살 이라는 데 무게를 둡니다. 문제는 이순신 장군의 
죽음의 가치를 충성의 표현에 두지 않고 선조에 대한 
반항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같은 죽음을 두고 
최고의 가치인 국가를 위한 죽음이냐, 아니면 한 사람에
대한 한풀이냐에 대한 해답이 바로 전사냐 자살이냐 입니다.

당시 각종 보고서를 종합한 사관은 이순신 장군의 운명
순간을 "이순신이 전선을 이끌고 노량 앞바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정말 많은 적선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사력을 다해 적선을 향해 총통과 불화살을 쏘았다. 전투는
오래도록 계속되었고 혈전이었다. 이순신도 친히 활을 잡아
적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 때 적의 탄환이 이순신의 가슴에
명중했다. 그는 갑판에 엎어져 운명했다." 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의 자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의
운명하는 순간을 "이순신은 유성룡이 해임되자 자신에게도
피해가 올 것을 예감하고 자살을 가장해 평소 입고 있던 갑옷을 
벗고 뱃머리로 나아가 적탄을 맞고 죽었다." 고 설명 합니다.
하지만 당시 주력 전선으로 활약했던 판옥선에서는 홀로 나설
뱃머리 구조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이겠습니까?

사업도 진실해야 성공 합니다. 진실만이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 해석도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 앞에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경영 컨설팅 회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사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아주 작은 분노에도 참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는 실수(실패)를 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리더의
겸손한 마음가짐과 진실 된 마음은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 덕목입니다.

글 이부경
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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