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실천하는 이순신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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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건의 게시물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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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종군(白衣從軍), (2012. 04. 23) (0)
관리자 | 2012.05.20
백의종군(白衣從軍) 1597년4월1일 중죄인으로 끌려왔던 죄 없는 이순신이 풀려났다. 이순신이 아니라, 갇혀서 고문 당하던 옥사(獄舍)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던 이 나라 조선이 풀려났다. 4월3일, 한성을 출발하여 금오랑(金吾郞) 이사빈 일행과 과천, 수원, 오산, 평택을 거쳐
기회는 바로 당신 입니다. (2012. 04. 16 (0)
관리자 | 2012.05.20
기회는 바로 당신 입니다. 왜적의 정황을 진술하는 장계(陳倭情狀, 1594. 4. 20) 중에서 “삼가 왜의 정황에 대한 일로 아뢰나이다. 이달 4월18일에 도착한 전라우도 중위장 수군 우후(虞侯) 이정충(李廷忠)의 보고내용은 이러하였습니다. – 중략 – 허능
임진왜란 현장 생중계 (2012. 04. 09) (0)
관리자 | 2012.04.12
임진왜란 현장 생중계 1592년4월15일(甲辰). 맑다. 나라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순찰사에게 보내는 답장과 별록을 써서, 곧바로 역졸을 시켜 달려 보냈다. 해질 무렵에 영남우수사(元均)가 통첩을 보냈는데, “왜선 90여 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絶影島)에 정박했다.”고 한
통선일척경복후대죄장(統船一隻傾覆後待罪狀), (201 (0)
관리자 | 2012.04.02
통선일척경복후대죄장(統船一隻傾覆後待罪狀) “삼가 아뢰나이다. 신은 외람되이 중책을 지고 밤낮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티끌만한 공로나마 보답하려고 생각해 왔습니다. 작년 여름과 가을에 흉한 도적들이 독을 마구 뿜으면서 수륙으로 침범해 올 때 다행히도 하늘의 도우심을 힘입어 여러 번 승첩하게 되었
리더의 자기 수련(2012. 03. 26) (0)
관리자 | 2012.03.27
리더의 자기 수련 1592년3월26일(丙戌). 맑다. 우후(李夢龜)와 군관 송희립(宋希立) 이 남해로 갔다. 늦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마친 후 활 15순을 쏘았다. 1592년3월27일(丁亥). 맑고 바람도 없었다. 아침을 일찍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召浦 : 여수 동쪽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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