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실천하는 이순신 포럼

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721 건의 게시물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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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는 계급장을 떼라.!  (0)
관리자 | 2012.09.24
.  현장에서는 계급장을 떼라.! 1594년 11월28일 일기 이후 메모 글, “5월3일, 곳간을 뒤져 조사 하니, 군량이 349섬14말4되와 나무를 팔아 들인 쌀(貿木米) 80, 모두 432섬 14말4되에서 지금 남은 것이 65섬 14말4되이다. 1595년 2월19일, 송한련이 와
통제사 이순신이 벽파진에서 적을 무찌르고…. (0)
관리자 | 2012.09.17
. 통제사 이순신이 벽파진에서 적을 무찌르고…. 이순신의 활은 쏘면 명중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화살 한 개를 시위에 먹여 그 적장을 향하여 쏘았다. 그 살은 바로 그 쇠 갑옷에 비단 두루마기를 입은 장수의 가슴을 뚫었다. 그 장수는 큰 소리 한 마디를 지르고 거꾸로 바다에 떨어졌다. (
知己知彼 白戰不殆 (0)
관리자 | 2012.09.03
知己知彼 白戰不殆1594년9월3일(戊寅). 비가 왔다. 새벽에 밀지(密旨)가 들어왔는데, 바다와 육지의 여러 장수들은 팔짱을 끼고 서로 바라보기만하고 한 가지라도 계책을 세워서 적을 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3년 동안이나 해상에 있었는데 그럴 리가 만무하다.여러 장수들과 함께 죽음으로써 원수를 갚고자
소실된 역사 기록들! (0)
관리자 | 2012.08.27
. 소실된 역사 기록들!선조실록(1592. 7. 23. 庚辰) 춘추관(春秋館)에서 건의 하였다.“변란이 터진 이후 조정과 민간에서 기록한 문서들이 남김없이모조리 없어졌고 전하가 서쪽지방으로 떠나간 뒤로는 행차를 따라다니는 사관(史官)들이 가졌던 일기들도 거의 다 불타고못쓰게 되었습니다. 만약 지금
강화의 조건으로 한강 이남의 땅을 요구한 일본 (0)
관리자 | 2012.08.20
강화의 조건으로 한강 이남의 땅을 요구한 일본 선조실록 (1594. 8. 15 庚申) 해평부원군 윤근수(尹根壽)가 보고하였다. “신이 오늘 신흠(申欽)과 함께 명나라의 총병을 만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적의 의도는 왕으로 책봉해 줄 것과 명나라에 조공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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