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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및 관리능력의 부재를 드러낸 조정! (0)
관리자 | 2014.05.11
행정 및 관리능력의 부재를 드러낸 조정!선조실록 1592. 5. 11(庚午).- 비변사에서 건의 하였다.  "군사는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예기(銳氣)가 차츰꺽이는 법입니다.  도원수가 대 병력을 가지고도 강 위에서 지키고 앉아 있는 지가 여러 날이 되었는데, 박성립(朴成立) 등을 참수하
미투리 한 켤레를 바쳤으나........ (0)
관리자 | 2014.05.06
미투리 한 켤레를 바쳤으나..... 1597년5월7일(丁酉).  맑음.  아침에 정혜사(定惠寺)의 중 덕수(德修)가 와서 미투리 한 켤레를 바쳤으나 거절하고받지 않았다.  두세번 드나들며 청하기에 그 값을 주어 보내고 미투리는 바로 정원명(鄭元溟)에게 주었다.  늦게송
허둥지둥 세자로 책봉되는 광해군! (0)
관리자 | 2014.04.28
허둥지둥 세자로 책봉되는 광해군![선조수정실록, 1592년4월]임금이 서쪽으로 피난가기로 결정하자 대신들이 접견하러 들어가서 세자를 세워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어 놓자고 청하였다.(후략)[선조실록, 1592. 4. 28(丁巳)] 임금이 말하기를 "나라가 이렇게 위태로우니 더 이상 그대로나갈 수는
품방(品防) 역사를 직접 감독했다. (0)
관리자 | 2014.04.20
품방(品防) 역사를 직접 감독했다.1592년4월19일(戊申)  맑음.  아침에 품방(品防)에 해자 파는 일로 군관을 정해 보내고, 일찍 아침을 먹은 뒤에 동문 위로 나가 품방 역사를 직접 감독했다.  오후에 상격대(上隔臺)를 순시했다.  이날 입대하러 온 군사 700명
탄금대 전투의 일본측 기록 - 회본태합기(繪本太閤記 (0)
관리자 | 2014.04.18
탄금대 전투의 일본측 기록 - 회본태합기(繪本太閤記)!조선의 장군 신립은 하천변에 진을 치고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자 조선의 병졸들은 도망가고, 혹은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조선의 대장 신립도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때 조선 군중에서 키가 7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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